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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장준하선생 부인 김희숙여사 별세

3남 장호준목사 여권취소로 입국 못해
글쓴이 : 노창현 날짜 : 2018-07-03 (화) 07:45:03

백기완선생 등 조문


   

Newsroh=노창현기자 newsro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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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장준하 선생의 부인 김희숙 여사가 노환(老患)으로 2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1926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장준하 선생이 정주 신안소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할 때 사제지간으로 만나 17살이었던 1943년 결혼했다. 결혼 직후 장준하 선생이 일본군에 징집당해 중국으로 끌려가면서 소식이 끊어졌지만 1846년 1월 월남(越南)해 다시 만났다.

 

고인은 장준하 선생이 종합월간지 ‘사상계’를 발행할 때 편집과 교정을 도우며 3남2녀를 키웠고 1967년 6월 제7대 총선에서는 옥중 출마한 장준하 선생을 대신해 유세연설에 나서 압도적인 표차로 장준하 선생을 국회의원으로 당선시키기도 했다.

 

장준하 선생은 일제치하에서 광복군으로 활약했고 해방 뒤에는 독재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펼치는등 박정희 정권이 가장 두려워 한 민족지도자였다. 1975년 8월 경기 포천시 약사봉에서 등산 도중 숨진 채 발견됐으나 훗날 권력기관에 의해 타살 된 증거가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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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숙 여사와 장준하 선생 <사진 장호준 목사 제공>


 

김희숙 여사는 장준하 선생 별세후 정부의 혹독한 감시와 억압속에서 삯바느질 등을 하며 어렵게 생계를 이어갔다. 김희숙 여사의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고, 발인은 4일 오전 8시에 엄수된다. 유해는 장준하 선생이 영면한 경기도 파주시 장준하 공원에 합장될 예정이다.

 

한편 현재 미국 코네티컷에서 목회활동을 하는 고인의 3남 장호준 목사는 박근혜 정부 시절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여권이 취소돼 임종(臨終)을 지키지 못했다.

 

장호준 목사는 20대 총선을 앞두고 모금활동을 통해 2015년 12월부터 2016년 4월까지 미국 내 일간지 등에 '불의한 정권을 투표로 심판하자'는 내용의 시민광고를 게재한 혐의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검찰에 고발됐고, 외교부가 여권을 무효화했다. 장목사는 지난 4월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으나 항소했다.

 

최근 김희숙 여사가 위독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에 장 목사의 입국을 일시 허용해달라는 청원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이에 장 목사는 지난달 27일 페이스북을 통해 "여권 발급 제한을 해지하려면 항소를 포기하고 벌금을 납부해야한다"며, "어머니께서도 자식이 옳고 그른 것을 가리기 위해 항소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는 모습 보기를 더 원하시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이날 빈소엔 장준하 선생과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는 원로 민중운동가 백기완 선생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찾아와 조문해 시선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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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사진 평마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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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낙연 국무총리도 빈소를 찾아 애도의 뜻을 표했다. 이 총리는 조문 뒤 페이스북에 "역사의 부채. 민주화가 이뤄지기 전에는 눈을 감지 않겠다던 약속을 지키셨다고들 말한다"며 "산 사람들의 어깨는 더 무겁다"고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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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웹진 NEWSROH www.newsroh.com

 

 

<꼬리뉴스>

 

1975년 8월 17일 포천 약사봉..

 

박정희정권의 감시가 더욱 심해지던 1975년 8월 17일, 장준하선생은 유신정권에 저항하는 거사와 관련해 당시 비밀리에 김대중 등 다른 야당 인사들과의 연락을 돕고 있던 자신의 측근 임춘원을 집으로 초대해 아침식사를 함께 했다. 임춘원은 1960년대 서울 종로에서 상아탑학원을 설립해 운영하며 큰 재산을 모은 재력가로 선생의 사상계 출판을 남몰래 재정적으로 도와주다가 박정희 정권의 탄압을 받아 고초를 겪고 측근이 된 인물이었는데, 그의 증언에 의하면 장준하는 천주교에 입교하였다는 말과 임시정부 태극기 등을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 기증했다는 말을 하였고, 며칠전 망우리에 있는 부모의 산소에 다녀왔다며 벌초로 갈라진 자신의 손바닥을 펴보이며 보여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벌초로 생긴 이 손바닥의 상처는 나중에 경찰에 의해 장준하선생이 산에서 추락하는 도중 소나무 가지를 붙잡아 생긴 것이라며 그의 추락사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왜곡되어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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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선생 장례식에서 영정을 들고 있는 3남 장호준 목사. 당시 열일곱살의 고교생이었다

 

부고를 접한 함석헌, 양호민, 김준엽, 계훈제 등이 8월 17일부터 자리를 지켰고, 8월 18일에는 김대중, 양일동, 고흥문, 정일형 등 정치인들과, 김옥길 이화여자대학교 총장, 김동길 교수 등 1백여 명이 빈소를 다녀갔다. 신민당 김영삼 총재는 외유(外遊) 중이어서 조화를 보냈다.

 

8월 21일 오전 8시에 자택에서 가족 발인예배가 엄수되었다. 이어 유해는 영구차로 명동성당으로 옮겨져 오전 10시에는 김수환 추기경이 집전하는 영결미사가 거행되었다. 신구 합동으로 열린 이 장례식에는 백낙준, 유진오, 김영삼, 김대중, 박순천, 함석헌, 양일동, 김홍일, 김준엽, 김동길, 천관우 등 각계 지인들과 시민 1,500여 명이 참례했다. 영결식 후 유해는 시청앞, 국회의사당, 중앙청을 거쳐 서대문형무소 앞을 지나 경기도 파주군 광탄면의 나사렛 묘지에 옮겨져 안장되었다.

 

장준하선생 사후 1주일 뒤에 호림산악회 회원 및 지인들이 사고 현장에서 추모등반 행사를 가졌다. 사후 1개월 뒤인 9월 17일에는 후학 및 민주화운동 동지 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고현장에서 추모비 제막식이 열렸다. 비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오호 장준하 선생!

여기 이 말없는 골짝은 빼앗긴 민주주의 쟁취, 고루 잘 사는 사회, 민족의 자주평화, 통일운동의 위대한 지도자 장준하 선생이 원통히 숨진 곳. 뜻을 같이 하는 젊은이들이 맨 손으로 돌을 파 비를 세우니, 비록 말 못하는 돌부리 풀뿌리여! 먼 훗날 반드시 돌베개의 뜻을 옳게 증언하리라.’ (자료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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