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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사단은 영원한 민족부흥운동” 윤창희 위원장

‘독서동맹’ 통해 흥사단의 3가지 운동방향 조명
글쓴이 : 노창현 날짜 : 2018-09-04 (화) 06:36:59

 

Newsroh=노창현기자 newsroh@gmail.com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의 흥사단(興士團)은 해외에서 시작돼 국내에서도 뿌리를 내렸다는 점에서 특기할만하다.

 

흥사단은 1913년 5월 13일 도산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창립한 민족운동단체이다. 공립협회와 구국운동 비밀결사단체인 신민회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신민회 산하 청년학우회가 흥사단의 전신(前身)이다.

 

흥사단은 창립에서 해방 시기까지 조국의 광복과 새로운 나라 건설의 이념적 기초를 제공하고 독립운동을 위한 조직적 재정후원과 일꾼양성에 힘썼다. 궁극적인 목표는 민족부흥을 위한 민족의 힘을 기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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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희 미주흥사단 위원장

 

올들어 미주 단우들을 상대로 ‘독서동맹(讀書同盟)’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미주흥사단 윤창희 위원장은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흥사단 운동은 3개의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오대양 육대주를 다닌 모두 도산의 독립운동 행적과 관련된다. 미주, 중국 상해, 국내이다”라고 말했다.

 

1913년부터 1945년까지 진행된 미주 운동은 처음에는 서부 지방(SF, LA) 위주로 하다가, 1925년도에는 도산이 뉴욕과 시카고 방문을 계기로 유학생들을 비롯한 지식층 단우들을 영입하면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상해에서는 임시정부의 기틀을 잡자마자, 1920년도에 상해에 단소를 설립하고 이광수, 안정근, 손정도, 이유필 등의 입단식과 김구의 특별단우 입단식을 거행했고, 9월에는 흥사단 원동임시위원부를 발족했다.

 

국내에서는 1921년 귀국한 춘원 이광수가 박현환 김태진 김항주 등의 단우들과 2월 12일 서울에서 수양동맹회를 창립했다. 1923년 1월 16일에는 평양에서 김동원.김성업. 김병연.조명식 등 대성학교 동창생들을 중심으로 동우구락부를 조직, 2개의 흥사단 조직이 출발했다.

1925년 12월 두 단체의 대표들이 모여 수양동우회로 통합하고, 그 뒤에 동우회로 이름을 고쳤다. 1937년 일제는 동우회 사건을 일으켜, 강제로 흥사단을 패쇄시켰다. 1945년 해방을 맞고 나서 국내 흥사단이 재건되고, 국내 위원부 첫 위원장은 김윤경 단우가 맡았고, 1946년도엔 장리욱 단우가 위원장으로 단 본부를 국내로 이전하는 일을 맡았다.

 

1946년 9월 28일, 해방된 조국에서 최초의 제 1차 국내 대회가 서울 종로의 기독교 청년회관에서 열렸다. 9월 29일에는 선언문을 통해 조국의 부흥과 흥사단의 재건을 위하여 ‘자력 해방’, ‘자력 건설’ 만이 구국의 유일한 길임을 천명(闡明)하고 ‘민족자아의 해방’, ‘생활의 혁명’, ‘민족성의 환원’을 위한 동맹 수련을 제창, 17개조의 행동 강령을 제시하여 지대한 관심을 모았다.

 

1947년 10월 4, 5일에는 관수동 화광 국민학교에서 상견례와 기념식을 시작으로, 화신백화점 식당에서의 만찬과 희락회, 이튿날 창덕궁 후원에서의 운동회로 이어지는 성대한 대회를 치렀다. 1948년 10월 9일 기독교청년회관에서 열린 제3차 국내 대회는 ‘작은 일부터 나부터’라는 표어 아래, 300여명 의 단우와 내외 귀빈 400여명이 모인 가운데 거행되었다. (흥사단 교본 참조)

 

윤창희 위원장은 “1950년대 후반부터 흥사단이 늙어가고 있다는 우려의 소리와 함께 청소년 운동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1956년 연차대회의 대회사에서 주요한 선생은 새 세대의 청년에게 바톤을 넘겨줄 시기가 되었음을 선언했고 1963년 8월에는 만리포에서 하계수련회를 열어 흥사단 아카데미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했다. 흥사단 아카데미 운동은 해방 후에 전개된 성공한 프로그램으로 뽑힌다”고 소개했다.

 

윤창희 위원장은 “흥사단은 ‘민족부흥운동’에 초점을 맞춘 도산과 1세 단우들의 지혜를 알 수가 있다. 흥사단의 생명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 도산의 사상과 철학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서 그럴 것이다. 한국민족의 역사에 있어서, 이권이나 정치권력의 단체가 아니면서, 자발적인 단체가 105년이 된 것은 흥사단이 유일하다”고 평가했다.

 

 

글로벌웹진 NEWSROH www.newsroh.com

 

 

<꼬리뉴스>

 

흥사단 창단 105주년 미주위원회 겹경사 (2018.5.14.)

LA정영조 전위원장 10만달러 장학금 기증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m0604&wr_id=7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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