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김원일 칼럼니스트
러시아 정교회가 올해 10월 북러 수교 70주년 기념행사에 대표단을 파견한다고 러시아 정교회의 수장인 키릴 총주교가 모스크바 구세주 성당에서 북한의 정교회 단체인 ‘조선정교위원회’ 대표단을 접견한 자리에서 밝혔다.
리아노보스티통신에 따르면 키릴 총주교는 “북한에 정교회 신자들의 모임(조선정교위원회)이 만들어지고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것에 대해 만족스럽다”면서 북러 양국 수교 70주년인 올해 북한에서 열리는 축하행사에 참석하도록 정교회 대표단을 파견할 계획"이라고 북한 조선 정교 위원회 비탈리 김지성 위원장에게 말했다.
키릴 총주교는 북한과 남한을 모두 방문했었다면서 한국 문화와 역사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한 북한 지도자들이 평양에 러시아 정교회 사원인 성삼위일체(聖三位一體) 교회(정백 성당)를 건축한 것에 대해 감사를 표명했다. 이뿐 아니라 자신이 지난 2002년 평양에 있는 러시아 정교회를 방문한 사실을 상기시키며 이 성당이 북러 간의 우호를 상징한다고 말했다.
이 성당의 명칭에 대해서는 이 성당이 성삼위일체 성당으로 명명된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즉 성삼위가 일체적인 연합을 상징하는 만큼 한민족에게 매우 상징적이고 중요한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총주교는 이 성당의 이름처럼 한민족이 통일을 통해 일체가 되기를 바라는 만큼 인간의 노력과 지혜로운 행동에 답하는 신의 능력으로 한민족의 통일이 이루어지길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키릴 총주교는 북한 김정은 위원장도 이 정백성당을 방문해 주기 바란다고 희망하면서, 김정은 위원장이 이 성당을 방문할 의사가 있을 경우 자신도 고위 대표단으로 같이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키릴 총주교는 이번에 대표단의 일원으로 러시아를 방문한 북한 정교회 사제 장 블라디미르에게 사목(목회)을 맡기는 성사인 성품성사(聖品聖事)를 베풀었으며, 성모승천축일인 화요일에 또 다른 북한 사제 1명에게 성품성사를 베풀 예정이다. 총주교는 북한에 이런 신학생들과 사제들이 생겨남으로 정교회 신자들의 신앙적인 필요성들이 채워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최근 2년간 4명의 북한 신학생이 하바롭스크 정교회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바 있다. 이번 키릴 총주교의 북한 조선정교위원회 대표단 접견에는 황 바실리, 박 파벨, 윤 게오르기 집사들도 같이 배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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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뉴스>
러시아 정교회 세계 최대의 독립 동방정교회
러시아 정교회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독립 동방정교회로 신도 수는 2500만~500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비잔티움의 그리스 선교사들이 러시아에 전파한 그리스도교는 988년 성 블라디미르 대공이 통치하는 키예프 공국의 국교가 되었다.
1037~1448년 러시아 교회는 콘스탄티노플에서 임명한 수도 대주교가 통치했는데, 키예프의 그리스인 수도 대주교가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 교회 사이에 일시적인 연합을 선언했던 피렌체연합(1439)에 서명한 후 러시아교회는 독립자치교회가 되었다. 그러나 1453년에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의 함락과 함께 동로마 제국이 멸망함에 따라 러시아 정교는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된다.
1918~1939년 러시아 정교회는 공산당의 가혹한 박해를 받았다. 1922년 소비에트 정부의 지원을 받는 개혁운동의 일환인 갱신교회가 총대주교 찌혼의 교회에서 탈퇴하고, 신성종무원의 권력을 부활시키는 한편 성직자와 신도들을 분열시키자 러시아 정교회는 더욱 약해졌다. 찌혼이 죽은 뒤 정부는 총대주교 선거를 금지시켰다. 1927년 교회를 안정적으로 존속시키기 위해 수도 대주교 세르게이는 소비에트 정부에 대한 '충성'을 공식적으로 천명하였다. '정부에 충성'하는 태도는 교회 자체 내에 보다 큰 분열을 가져왔다.
그러다가 1943년 스탈린 종교정책의 갑작스러운 전환 덕분에 러시아 정교회는 놀랄만한 부흥을 이루었다. 새 총대주교가 선출되었고, 신학교들이 문을 열었으며, 수천 개의 교회가 활동을 시작했다. 1945~1959년에 비록 몇몇 성직자들이 체포, 유배되기는 했으나 교회의 공식적 조직은 크게 확장되어 문을 연 교회의 수가 25000개에 달했다. 그러나 1959~1964년에 흐루시초프 치하에서 교회에 대한 새로운 탄압이 광범위하게 시행되어 문을 연 교회 및 교회 기구의 수가 1만개 이하로 줄어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모스크바 총대주교구는 소련 정부가 지지하는 평화운동을 비롯한 국제적인 활동에 적극 참여하여 다른 정교회들로부터 널리 승인을 받았으며, 이들과 모스크바 총대주교구 사이에 정기적인 상호방문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1948년 러시아 교회 독립 5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모스크바에서 열린 정교회 지도자 회의는 바티칸과 세계교회협의회가 '미 제국주의'와 결탁했다고 맹렬히 비난하면서 반서구적 입장을 채택했다. 이러한 입장은 스탈린이 죽은 뒤 수정되어 총대주교구가 세계교회협의회에 가입했으며(1961),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는 로마 가톨릭 교회와도 우호적인 관계로 발전했다. 1991년 소연방붕괴이후에는 적극적으로 정부와 연대 및 협력의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출처 유라시아종교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