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에 대한 예의
부산대 철학과 최우원 교수가 학생들에게 낸 과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논란이 된 과제 내용은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대선 결과가 조작됐다는 증거를 찿아 첨부하고, 대법관의 입장에서 이 같은 사기극을 어떻게 판결할 것인지 생각해 평가하라”였다. 그는 “전자개표기 사기극인 가짜 대통령 노무현 사건이 부산대 학생들에 의해 밝혀질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교수는 2012년 극우 성향 조갑제닷컴에 진보 언론에 대한 비판글을 올리도록 강요해 정직 처분을 받은 바 있다. 또한 그는 대북전단 살포에 앞장서 이를 반대하는 접경지역 주민들과 충돌하는 등 잇단 돌출행동으로 물의를 빚어왔다. 나는 국정원 등 국가기관이 불법 개입해 치러진 2012년 대선이 공정선거가 아니라는 말은 들었어도, 노무현이 당선된 2002년 대선 결과가 조작된 부정선거였다는 말은 금시초문(今始初聞)이다. 그러면 누가 과연 ‘가짜 대통령’이란 말인가.
홍익대 법학과 류병운 교수가 최근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을 비하하는 내용이 담긴 시험 문제 영어 지문을 제시해 역시 논란이 되고 있다. 해당 지문에는 게으름뱅이 Dae Jung은 흑산도란 이름의 홍어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고, Roh는 17살이고 6살 때 부엉이 바위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쳐 지능지수 69의 저능아라고 적혀 있다. ‘홍어’는 호남을 비하할 때 쓰는 용어다. 논란이 일자 류 교수는 “문항에 풍자의 뜻을 담은 것은 학생들의 흥미를 높이기 위한 교수법”이라고 해명했지만, 풍자라도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을 게으름뱅이와 저능아로 표현한 것은 매우 부적절했다. 앞의 최 교수도 그렇지만 시절이 하수상할수록 권력에 아부하는 이런 사이비 학자들이 나대기 마련이다.
지난 2009년 9월 10일 전국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국립 서울 현충원 앞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가묘를 만들어 놓고 낫과 곡괭이로 때려 부수면서 고인의 묘를 파헤치는 끔찍한 퍼포먼스를 벌였다. 망자(亡者)에 대한 예절은 시공을 초월한 동서고금의 미덕일진데 동방예의지국을 자처하는 나라에서 망자를, 더구나 이미 유명을 달리한 전직 대통령을 능멸하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그것도 경찰이 수수방관(袖手傍觀)하는 가운데 ‘어버이’의 이름으로 자행됐다. 만일 진보단체 회원이나 정신 나간 누군가가 현충원 앞에서 이승만이나 박정희 전 대통령을 그렇게 모독했더라면 경찰이 가만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서해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을 했다며 심지어 고인에게 ‘영토를 포기한 반역의 대통령’이라는 누명을 뒤집어 씌웠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어디에도 노무현이 NLL을 명시적으로 포기했다는 내용은 단 한 줄도 없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은 대선 승리를 위해 대화록 내용을 날조해 전직 국가원수를 반역의 대통령으로 몰아 부관참시(剖棺斬屍)를 하는 반인륜적 폭거를 저질렀다.
마침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내용의 진위를 두고 여야가 치고받고 싸우는 한심한 모습을 지켜보던 조선족 동포 2세인 중국 랴오닝 공안 사법관리 간부학교 조봉 교수가 정치권을 향해 일침을 가했다. “중국에서는 천인공노할 죄를 짓지 않는 한 망자는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 ‘죽은 자가 어른이다(死者爲大)’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이미 세상을 떠난 자는 예우(禮遇)해 준다. 더구나 정상 간의 대화록 공개라니, 중국인들은 더욱 놀라워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치인들이여, 동족끼리 싸우는 것을 다른 나라에서는 비웃고 손가락질한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라.”
언필칭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문화민족이라면 최소한 망자에 대한 예의쯤은 지킬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물며 망자가 전직 대통령임에야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