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마지막 총독은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이다. 그는 일본이 패망하고 조선총독부가 폐지되자 1945년 9월 12일 일본으로 떠났다. 그는 고별 연설에서 “일본은 졌다. 그러나 조선이 승리한 것은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이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란 세월이 훨씬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 국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더 무서운 ‘식민사관()植民史觀’을 심어 놓았다. 결국 조선인들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작금의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면 주술(呪術)과도 같은 그의 예언이 적중한 것 같아 전율(戰慄)을 느끼게 된다. 이명박에 이어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고나서부터 공공연히 친일이 정당화되고 독재가 미화되는 등 친일잔재(親日殘滓)인 냉전수구세력과 그 후손들의 망언(妄言)과 망동(妄動)이 날로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 노부유키는 유명(幽明)을 달리 했으니 다시 돌아올 리 없지만, 일제가 심어 놓은 식민사관은 우리의 민족정기를 말살하고 나라를 골병들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지난해 6월,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문창극은 언론인 시절 서울 서초구 온누리 교회 강연에서 “일본의 식민지배와 남북 분단은 하나님의뜻”이며 “일본이 이웃인 건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지정학적 축복”이라는 등의 망언을 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자 그는 결국 총리 후보 자리에서 사퇴한다. 그가 물러나기 며칠 전 KBS 이사장 이인호는 문창극의 친일 발언 논란과 관련해 “문창극 교회 강연에 감명 받았다. 문 후보자가 낙마(落馬)해야 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 할 때”라며 그의 친일 미화 발언을 적극 옹호했다. 문창극이 낙마했으니 앞으로 이인호 같은 친일파가 할 일은 국적을 버리고 한국을 떠나 일본으로 건너 가는 일만 남았다고 하겠다.
같은 달 KBS 아나운서 출신의 정미홍은 한 언론사 초청 강연에서 “지금 김구 선생이 최고의 애국자라고 되어 있지만 그분은 아무 것도 모르는 시골 출신으로 독립운동만 하다가 무조건 ‘분단은 안 돼’, 이래 가지고 남쪽에서 선거를 한다고 하니까 그냥 무단으로 김일성을 만나러 갔고 거기서 ‘김일성 만세’를 불렀다”는 등의 허위 주장을 서슴지 않았다. “38선을 베고 쓰러질 지언정 구차한 안일(安逸)을 위해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 협력하지 않겠다” 고 한 백범 김구 선생, “독립정부가 되면 청사의 문지기로 뜰을 쓸고 죽을 수 있기를 소망”했던 절세의 애국자를 정미홍 같은 한낱 천박하고 무지한 여인이 감히 세 치 혀를 놀려 능욕(凌辱)하다니, 정미홍은 그만 그 더러운 입을 다물라.
친일반민족행위자 이명세가 조부인 이인호는 지난해 10월 22일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서 “김구 선생은 임시정부 수반(首班)까지 하면서 독립운동가로 대단히 훌륭하지만 1948년 대한민국 독립에는 반대했기 때문에 대한민국 건국 공로자로 거론한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그녀는 김구 등이 이끈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에 대해서도 “상해 임시정부는 임시정부로도 평가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정면으로 부인한 몰역사적(沒歷史的) 망언이다. 김구는 남한에 단독정부를 세울 경우 남북이 분단될 것을 우려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반대한 것일 뿐 그가 대한민국 독립에 반대했다는 이인호의 주장은 명백한 역사 왜곡으로 대꾸할 가치도 없다.
지난해 6월 왜곡된 역사관 논란으로 물러난 문창극이 며칠 전 한 보수매체가 주최한 강연에서 이승만과 박정희를 “보석같은 분들”이라고 극찬했다. 그는 “이승만이 친일파 청산을 위한 반민특위 구성에 제동을 건 것은 미래를 지향했기 때문”이라는 해괴(駭怪)한 주장을 폈다. 잘못된 과거 청산 없이 어떻게 미래를 지향할 수 있는가. 그의 논리대로라면 드골 프랑스 대통령은 이승만과는 달리 미래지향적이지 않아 나치 부역자(附逆者)들을 처단(處斷)했단 말이 된다.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1949년 6월 6일 이승만이 반민특위를 해산한 것은 오랜 국외 체류로 국내 정치 기반이 없던 그가 권력욕에 눈이 먼 나머지 미국의 지원 아래 청산의 대상인 친일파와 손잡고 거꾸로 항일독립운동 세력을 청산한 반민족적 폭거(暴擧)였다. 그로부터 20일 후인 같은 달 26일 김구가 암살된다. 이승만은 김구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반면, 일본군 헌병 출신으로 악명을 떨친 특무대장 김창룡 장례식엔 얼굴을 내밀었다.
이승만의 행적을 반추(反芻)해 보면 그가 과연 독립운동을 한 사람이 맞는지 강한 의구심(疑懼心)을 지울 수 없을 정도로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미국 공식 문서에 자신의 국적을 일본으로 기재했는가 하면, 장인환. 전명운 의사가 일본의 앞잡이 더럼 스티븐스를 샌프란시스코에서 암살했을 때 “살인범 통역을 할 수 없다”며 통역 요청을 거절했다. 안중근 의사가 민족의 원흉(元兇)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을 땐 “국제적으로 테러리즘 민족으로 낙인찍힌다”며 의거를 비난했다. 이는 독립운동가의 모습이 아니다.
같은 날 강연에서 문창극에 앞서 축사를 한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장 김문수는 “광화문에 이승만과 박정희 동상을 세워야 한다”고 열변(熱辯)을 토했다. 김문수는 이미 지난해 11월 24일 당원 대상 강연에서 민주주의를 훼손(毁損)하고 인권을 유린(蹂躪)한 독재자로 비판 받는 두 전직 대통령의 동상을 광화문은 물론 초등학교에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이어 “이승만과 박정희를 욕하면 선진국이 안 된다”고도 했다. 논리의 비약도 유분수지 이쯤되면 가히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의 중증환자 수준임이 틀림 없다. 영구집권을 위해 이승만과 박정희 두 ‘짝퉁 보석’이 저지른 천인공노할 반민주적 악행에 대해선 지면관계상 생략한다.
프랑스의 페탕 원수, ‘자유 프랑스’를 이끌고 나치 독일과 싸운 드골 장군과는 다른 길을 간 인물이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과 프랑스군이 가장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베르뎅 전투에서 승리해 국민적 영웅이 된 페탕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비시 괴뢰 정부를 이끌고 나치 점령군에 부역한 죄로 단죄(斷罪)되어 나폴레옹처럼 대서양의 외딴섬 릴디외의 감옥에서 95세로 생을 마감했다. 프랑스는 조국을 배반한 죄를 다스림에 있어 과거의 공적(功績) 여부를 따지지 않고 엄단했다. 나치 독일에 점령당했던 덴마크, 노르웨이, 벨기에 등 주변국들도 프랑스와 똑같이 부역 행위를 추상(秋霜)같이 단죄했다. 국가와 민족을 배신하는 행위는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불문하고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되거나 용서 받을 수 없는 대역죄이다.
한국은 어떤가. “독립군의 씨를 말리겠다”며 독립군 토벌(討伐)에 앞장섰던 간도 특설대 장교 출신 백선엽은 가증스럽게도 일제 때 그가 저지른 반민족 행위는 감춘 채 한국전쟁 때 세운 전공 만을 내세워 일약 ‘전쟁 영웅’으로 추앙(推仰)받고 있다. 이승만이 반민특위를 존속시켜 친일잔재를 과감히 청산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잡았더라면 다카키 마사오 같은 민족반역자가 해방된 조국에서 대통령이 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항일독립운동가와 친일매국노가 국립묘지에 나란히 묻히는 참담(慘憺)한 일도 없을 것이다. 이승만이 드골처럼 했더라면 지금 나라꼴이 이 지경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베 노부유키가 고별 연설에서 조선이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찿으려면 100년이란 세월이 훨씬 더 걸릴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올해가 광복 70주년이니 앞으로 30여년의 세월이 더 흐르면 과연 우리 민족이 제 정신을 차리고 과거의 영광을 되찿을 수 있게 될까? 제 정신을 차리기는커녕 요즘 친일파들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제 세상 만난 듯 날뛰는 모습을 보면 마치 ‘친일파들의 전성시대’를 맞은 느낌이다. 가히 ‘친일파의 , 친일파에 의한, 친일파를 위한 대한민국’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그들이 나라를 쥐락펴락하고 있으니 말이다.
마침 오늘(3월 26일)은 1909년 10월 26일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가 1910년 3월 26일 여순 감옥에서 순국한 지 105주년 되는 날이다. 안 의사가 분단 조국의 한 켠에서 친일파가 부활(復活)해 다시금 나라를 망국의 길로 이끌고 있는 참담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지금 지하에서 통한(痛恨)의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단재(丹齋) 신채호 선생이 “과거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했다. 치매 수준의 치명적인 집단 건망증을 앓고 있는 우리 민족에게 과연 미래가 있을까? 일제가 36년 동안 심어 놓고 떠난, 아베 노부유키가 말한 총과 대포보다 더 무서운 ‘식민사관’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우리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