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8일, 원내수석부대표 임기를 마친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이 소회를 밝히는 자리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서해북방한계선(NLL)을 포기한다는 말씀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발언을 했다. 윤 의원은 “국가 최고통수권자가 어떻게 영토를 포기할 수 있었겠느냐. 그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한 발 더 나아가 “노 전 대통령은 NLL을 뛰어넘어 남포 조선협력단지, 한강 허브에 이르는 경제협력사업이라는 큰 꿈을 가졌던 것으로 사료된다”고까지 부언(附言)했다. 집권당 핵심 실세로 “노 전 대통령은 ‘포기’라는 단어만 쓰지 않았을 뿐 NLL을 포기한 것은 사실”이라며 대야 공세를 주도했던 윤 의원의 뜻밖의 양심선언(?)으로, 노 전 대통령이 ‘NLL포기 발언’을 했다는 새누리당의 주장이 사실무근의 사악한 정치공세였음이 재확인됐다.
그로부터 7개월 여가 지난 같은 해 12월 24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최초로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에게 벌금형이 선고됐다. 법원은 정 의원이 청와대 통일비서관 재직시 열람한 대화록 내용을 언론에 흘리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당시 총괄선대본부장)와 권영세 주중 대사(당시 선대위 종합상황실장)에게 불법 누설한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새누리당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NLL포기 의혹을 쟁점화해 선거전에 적극 활용했다. 당시 김 대표는 대선 닷새 전인 12월 14일 부산 유세에서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한 증거라며 폭로한 문건 내용이 이후 대화록 원본과 토씨까지 정확히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김 대표는 2013년 6월 26일 마침내 “지난 대선 때 그 대화록을 다 입수해서 읽어봤다”고 실토했다. 그후 대화록 불법 유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김 대표는 대화록의 출처를 묻자 “찌라시(증권가 정보지)에서 봤다”고 둘러대 빈축(嚬蹙)을 샀다. 검찰은 김 대표와 권 대사를 무혐의 처분했다.
NLL논란이 한창일 때 당시 새누리당 정우택 최고위원은 심지어 노 전 대통령을 “영토를 포기한 반역의 대통령”이라 극언했다. 그러나 검찰 수사 결과 NLL 포기 발언은 노 대통령이 아니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도 지금껏 어느 한 사람 사과 한마디가 없다.
정문헌 의원과 서상기 의원(당시 국회정보위원장) 등은 “노 대통령의 NLL발언이 사실이 아니라면, 정치 생명을 걸겠다”며 “여기에는 의원직도 포함된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정 의원에 대한 법원의 유죄 판결이 선고되자 사실이 아닌 경우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큰소리치던 새누리당 의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책임질 사람은 따로 있다”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참으로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사람들이다.
지난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거행된 노 전 대통령 서거 6주기 추도식에서 고인의 아들 건호씨는 유족 인사말을 통해 “전직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면서 피를 토하듯 대화록을 읽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아무 말 없이 불쑥 나타났다”며 김 대표를 힐난했다. 그런 건호씨에 대해 비록 불청객이기는 하나 추도식에 온 사람에게 상주로서 너무 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먼저 예를 갖추지 않은 사람은 김 대표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고운 법이다. 평소 김 대표는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인정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 대선 때는 그가 하지도 않은 NLL 포기발언을 했다고 앞장서 주장했다. 그랬으면 추도식에 참석하기에 앞서 유족 측에 최소한 립 서비스로라도 사과 한마디 정도는 했어야 옳다. 속담에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정권을 잡기 위해 이미 유명(幽明)을 달리한 전직 국가원수를 욕보이는 패륜 행위가 더는 없어야겠다.